소설의 문법과 형식, 현실 모방, 시간, 성소수자와 젠더, 역사 등
‘지금-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소설의 새로운 미학적 특징과
그 변화 양상을 치밀하게 포착한 역작
문학평론가 손정수의 네 번째 평론집 『텍스트와 콘텍스트, 혹은 한국 소설의 현상과 맥락』이 출간되었다. 손정수 평론가는 『미와 이데올로기』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 등 ‘지금-이곳’의 한국문학 지형도를 그리며 소설의 새로운 영토와 문학 속의 현실, 문학과 비평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비평 활동을 계속해왔다.
이번 책은 특히 동시대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평론한 글들 중 주제론에 해당하는 것을 모아 엮었다. 1부 ‘한국 소설의 진화와 내적 문법의 변화’는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새로운 미학적 특징을 구축해나가는 한국 소설의 경향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필자는 그 진화의 양상과 내적 문법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주제나 사건과 같은 내용의 차원보다 주로 형식에 나타난 차이와 변화에 주목했다. 2부 ‘현실에 반응하는 새로운 소설적 방식들’은 현실 변화의 인력에 반응하는 한국 소설의 새로운 방식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텍스트에 나타난 의미 차원의 양상과 더불어 그것이 콘텍스트의 차원에서 갖는 수행적 맥락을 아울러 살펴보고자 했다.
손정수
저자 : 손정수
저자 손정수는 문학평론가.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종말에의 상상력이 불러낸 가상현실의 세계」가 당선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미와 이데올로기』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 『비평, 혹은 소설적 증상에 대한 분석 』 등이 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머리말 – 현상과 맥락 사이의 틈을 바라보며
제1부 한국 소설의 진화와 내적 문법의 변화
변형되고 생성되는 최근 한국 소설의 문법들
반복되는 기표들, 혹은 단편 형식의 진화
『2010년대 한국 소설의 은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보고서
허구 속의 허구, 꿈 속의 꿈
플래시포워드, 혹은 시간을 둘러싼 소설적 모험
고유, 전유, 공유?한국 독자로서 한·중·일 3국의 소설 읽기
제2부 현실에 반응하는 새로운 소설적 방식들
공허의 불가피성과 그에 대한 의혹
‘용산’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들의 스펙트럼
메타포, 알레고리, 아날로지
미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반(反)변증법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한국 소설의 시선
신종 바틀비들이 생성되는 원인
역사에 접근하는 최근 장편의 형식과 그 정치적 무의식
한국 소설의 진화와 내적 문법의 변화
제1부 「변형되고 생성되는 최근 한국 소설의 문법들」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진행된 한국 소설의 현실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주제를 ‘재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시대의 이야기’라고 정리하며, 작가의 삶이나 기억, 사회적 현실 등으로부터 발원하지 않고 앞서 존재했던 텍스트들을 재전유하는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소설들을 소설적 문법의 변화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논의하고 있다.
「반복되는 기표들, 혹은 단편 형식의 진화」에서는 단편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이 증대하는 소설의 현상을 박성원, 황정은, 손보미의 경우를 통해 살피고 있다. 필자는 단편 형식의 한국적 특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시장 상황의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시장의 요구를 초과하여 그 자체의 형질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형식 변화의 새로운 조짐이 징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징후의 특징과 의미를 검토한다.
「『2010년대 한국 소설의 은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보고서」에서는 낯설기만 했던 2000년대 문학적 돌연변이들이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근거로 가계도를 그려가는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난 진화의 계보를 들여다보며 불규칙하게만 여겨졌던 그 발생과 변이의 운동과 궤적을 추적한다.
「허구 속의 허구, 꿈 속의 꿈」에서는 현실 모방으로서의 허구를 반성하는 장치가 점점 더 증가해가는 우리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모방된 현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내면과 무의식, 혹은 상상과 환상이 폭넓게 침범하는, 현실과 허구의 관계를 전도시키거나 그 둘 사이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활발하게 발휘되는 모습들을 손보미, 오한기, 이상우의 소설을 통해 살펴본다.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 혹은 시간을 둘러싼 소설적 모험」에서는 한국 소설에서 플래시포워드가 사용되는 방식을 주로 서구 소설의 경우와 비교하여 살펴보면서 그 고유한 특징을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와 같은 소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과 특수성의 발생 맥락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고유(固有), 전유(專有), 공유(共有)―한국 독자로서 한?중?일 3국의 소설 읽기」에서는 문학잡지 『자음과모음』에서 진행한 한중일 작품 교류를 통해 서로 다른 세 나라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저마다의 고유함을 확인하고, 또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에게는 없었던 특징들을 새롭게 전유(appropriation)할 수 있었던 경험을 술회한다.
현실에 반응하는 새로운 소설적 방식들
제2부 「공허의 불가피성과 그에 대한 의혹」에서는 이전 시대 문학의 사회적?미학적 무게가 약화되고 상상과 유머가 새로운 문학적 요소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문학이 이전에 비해 가벼워지고 밝아진 대신 그 흐름의 끝자락에는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새롭게 싹트는 새로운 세대 서사의 특징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용산’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들의 스펙트럼」에서는 ‘용산’을 기원으로 하여 파생되는 기표들의 흔적이 처음에는 사회적 관계들의 장을 향해 정치적 관심의 환기를 위해 도입되었다가 이후 대중적 서사들이 생산되는 장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다시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는 의식과 형식의 실험으로 심화된 과정을 짚어보면서 한국문학에서 일어난 형질의 변화를 ‘용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메타포, 알레고리, 아날로지」에서는 미디어 네트워크의 체계 속에서 다른 미디어들과 점점 더 빈번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전과는 다른 좌표 위에서 유동하는 소설들을 관찰하며, 표면상 그 외연이 확장되는 듯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현실에 대한 소설의 자율성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를 짚어본다.
「미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반(反)변증법」에서는 관념성의 방향을 관성적으로 취하지 않는 최근 소설에서 구성이라는 계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을 향한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확인한다. 또한 구성의 복잡한 회로 대신 그 소박한 구성의 틈 사이로 현실의 파편 혹은 단면이 직접 드러나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와 같은 효과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자각적으로 의도하는 바임을 밝힌다.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한국 소설의 시선」에서는 2000년대 후반 소설들을 중심으로 성적 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소설의 시선의 양상과 그 성격을 이념의 시선, 관계의 시선, 텍스트의 시선, 섹슈얼리티의 시선 등 네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신종 바틀비들이 생성되는 원인」에서는 최근 우리의 문학작품과 인문학 담론에 나타난 바틀비의 흔적들을 탐색하며 특히 그것들이 기원, 파생되어 형성한 변형의 양상과 성격에 주목한다. 그리고 바틀비 모티프가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현실적 근거와 그처럼 변형된 신종 바틀비들이 생성되는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역사에 접근하는 최근 장편의 형식과 그 정치적 무의식」에서는 역사의 귀환이라는 현상, 그리고 현상의 현실적 근거와 소설들의 형식이 그런 주제에 어울린다고 여겨졌던 전통적인 리얼리즘 방식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