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세 아들이 마음을 바친 한 여인
한성 제일 기녀 초요갱의 예악과 연정
세종부터 문종, 단종을 거쳐 세조 대에 이르기까지, 초요갱이 활동한 때는 그야말로 역사가 격변하는 시기였다. 한글이 창제되고, 모사 한명회와 김종서 장군이 격돌하고, 육신과 공신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동안 대중 매체에서 다룬 초요갱의 모습은 그저 정사에 기록된 팜므파탈 정도였지만 박지영 작가는 면밀한 조사 끝에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시대를 꿰뚫는 예인의 가혹한 운명을 바라본 것이다. 설레고 두근대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초요갱의 이야기는 바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기나긴 고행 끝에 완성되었다. 편안하게 다가오면서도 그 안에 숨은 깊이는 소설 초요갱만의 특별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박지영
저자 : 박지영
저자 박지영은 다양한 경험을 하던 중, 뭔가에 끌리듯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초요갱』을 한창 집필하던 때 이야기가 풀리지 않아 긴 시간 동안 길 위로 떠났다. 다시 돌아온 후에야 『초요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초요갱』으로 ‘제3회 혼불문학상’ 최종심 13편에 올랐으며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으로 ‘제1회 오산문학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제1부
제2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서
초요갱은 조선왕조실록에 열여섯 번이나 이름이 오른 여인이며, 궁중 악사(樂事)인 박연의 수제자였다. 무엇보다 궁중악의 유일한 전승자이기도 한 초요갱은 기녀보다 예인에 가까웠다. 결국 그 재능을 인정받아 천민 신분까지 면하게 된다.
사랑 앞에서 그 누구보다 당당할 수 있었던 여인. 기녀보다 예인으로 불리고자 노력했던 여인. 소용돌이치던 역사 속에서 묵묵히 꽃을 피웠던 여인. 그녀의 이야기를 이제 마친다. _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