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의 전기를 청소년의 눈 높이에 맞춰 엮은 책이다. 해월 최시형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 행동, 양심, 신앙에 견줄 만한 인물이다. 간디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인도는 간디를 중축으로 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피를 흘린 대가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라진 독립이었다. 간디는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단식까지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 힌두교도 청년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해월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동학’이라는 신앙공동체 리더로서 역할에 소홀함이 없었다. 희망을 잃고 떠돌던 백성들을 위로했다. 해월 최시형은 백성들의 등불이었다. 기울어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백성들을 일깨우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의연하게 목숨을 버렸다. 최시형은 근대조선과 대한민국의 징검다리 사이에서 민족이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주체적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보여준 지도자였다.
해월이 아니었다면 동학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하에서 30여 년 동안 동학을 이끌어 온 불굴의 의지는 해월 최시형이었기에 불타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최시형은 인도의 영혼으로 빛난 간디처럼 ‘조선의 영혼’으로 불리고 있다.
1960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했으며 동국대를 졸업했다.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새 사냥』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북일보에서 15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신 택리지』, 『동학 100주년, 발상지를 가다』 등을 연재했다. 현재는 포항 CBS 보도제작국장으로 있다.
각박한 일상 속에서 몸도 마음도 조용해지고 싶었던 그는, 살던 아파트를 팔고 시골로 들어가 집을 짓고 마당을 가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루의 절반은 시골에서, 나머지 절반은 도시에서 사는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밥벌이와 창작의 이중생활을 하면서 장편소설 『농담의 세계』(휴먼앤북스), 평전 『새로운 세상을 꿈꾼 해월 최시형』(이룸), 1900~194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세토내해 연안의 가난한 어부들이 포항 구룡포로 진출한 역정을 추적하여 쓴 다큐 산문집 『구룡포에 살았다』(아르코, 공저) 등을 펴냈다.
지금도 해가 뜨면 도시의 방송사로 출근해 일하고, 밤에는 시골로 돌아와 소설을 쓴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해도 된다’는 신념을 풍선처럼 키우면서 어떤 조건에서든 당당하게 글 쓰며 살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독한 탄압 속에서 동학 조직을 이끈 혁명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의 투지에 주목하다!
■■■ 마하트마 간디 못지않은 불굴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이 없었다면 전봉준도 김개남도 없었다. 동학 혁명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동학을 중심으로 한 3·1운동도 싹틀 수 없었다. 동학의 정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사람! 혹독한 탄압 속에 조직을 끌어온 사람! 시대의 전환을 가능케 한 이론의 바탕을 구축한 사람!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지닌 역동성을 비축한 사람! 오로지 해월이라는 한 사람이 있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해월 최시형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 행동, 양심, 신앙에 견줄 만한 인물이다. 간디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인도는 간디를 중축으로 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피를 흘린 대가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라진 독립이었다. 간디는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단식까지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 힌두교도 청년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해월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동학’이라는 신앙공동체 리더로서 역할에 소홀함이 없었다. 희망을 잃고 떠돌던 백성들을 위로했다. 해월 최시형은 그들의 등불이었다. 기울어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백성들을 일깨우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의연하게 목숨을 버렸다. 그는 근대조선과 대한민국의 징검다리 사이에서 민족이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주체적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보여준 지도자였다. 해월이 아니었다면 동학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하에서 30여 년 동안 동학을 이끌어 온 불굴의 의지는 해월 최시형이었기에 불타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최시형은 인도의 영혼으로 빛난 간디처럼 ‘조선의 영혼’으로 불리고 있다.
■■■ 줄거리
최시형(崔時亨)은 1827년 4월 6일 경북 경주시 황오동 229번지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초명은 경상(慶翔), 자는 경오(敬悟), 호는 해월(海月)이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네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궁핍과 외로움을 견뎌낸다. 열일곱 살에 종이 만드는 기술자가 된다. 그때 종이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희망’을 키운다. 열아홉 살 때 밀양손씨와 결혼한 후 처가가 있는 흥해에 살다가, 스물여덟 살 때 경주 승광면 마북동으로 이사하여 마을 대표인 집강(執綱)이 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일을 잘 처리하는 해월을 기려 기념비를 세워주기도 한다.
해월이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경주 용담정에서 수운 최제우를 만난다. 그 후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최제우가 동학을 포교하기 시작한 1861년 6월에 동학에 입교하여 한 달에 서너 차례씩 최제우를 찾아가 설교를 듣고 의범(儀範)을 배웠다고 알려진다. 그 무렵, 해월은 집에 있을 때 명상과 극기로 도를 닦기에 힘썼고, 하늘의 소리를 듣는 등 여러 가지 이적(異蹟)을 체험한다. 1862년 3월 최제우로부터 포교에 힘쓰라는 명을 받고, 1863년 8월 도통을 이어받는다.
수운 최제우가 처형되고 해월은 충청도와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도피생활을 하며 동학의 명맥을 이어갔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 평등과 주체적인 삶에 대해 가르쳤다. 부패하고 부능한 조선왕조에 항거했고 외세에 맞서 싸웠다. 나아가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1894년 동학 혁명이 일어나자 동학도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됐다.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강원도 원주에서 체포돼 7월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