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청소년 장편소설 [좀 비뚤어지다]. 이 소설은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하거나 결심한 가출 청소년들이 의도치 않게 세상과 단절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인기 여배우 연해린이 약물에 취한 채 자신의 빌라 옥상에서 추락한다. 7층 높이에서 추락했음에도 죽지 않은 그녀는 좀비로 새롭게 태어나 희생자들을 물어뜯으면서 ‘좀비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어른들은 모두 죽거나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린 ‘19금 구역’. 이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의 좀비들은 물론 돌연변이 ‘핑크’들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데…
진저
저자 : 진저
저자 진저는 부산 사람. 직장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로맨스,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하게 쓰는 중이나, 묘하게도 그 주인공들은 대부분 십대의 ‘소년과 소녀’다. 종말을 주제로 한 단편 『두 팔의 다비드』와 십대 로맨스 소설 『발칙한 사춘기』『넌 나쁘다』를 전자책으로 냈다. 현재는, 네이버 웹소설 코너에서 판타지 좀비 소설인 <스니커즈를 신은 소녀>를 정식연재하고 있다. (HTTP://NOVEL.NAVER.COM/WEBNOVEL)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매일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학교와 집을 오가는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다.
프롤로그
녹슨 드럼통
핑크가 좋아
슈 스트링
캔 커피의 새로운 용도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마하 세븐
어쨌거나 핫팬츠
폭주족이 되자
세 번째 팔
최고의 대피소
셔터의 틈
창문을 열자, 공룡이 지나갔다
생수에게
번지 점프를 하다
에필로그
작가의 말
추천의 글 1
추천의 글 2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주목할 시선상’ 수상작
“차라리 마음껏 불안해하라. 갑자기 좀비 세상에 던져졌다 해도
그 불안함 속을 터벅터벅 힘차게 걸어가 보라.“
– 작가의 말에서
현실만큼 가혹한 ‘좀비의 시대’에
갇힌 아이들의 극한 생존기
『좀 비뚤어지다』는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하거나 결심한 가출 청소년들이 의도치 않게 세상과 단절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사정으로 머물 곳을 찾아 모여든 가출 청소년들. 가족을 버린 아이도, 버림받은 아이도 같은 크기의 상실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모습이 눈물겹다.
이 소설은 인기 여배우 연해린이 약에 취한 채 자신의 빌라 옥상에서 추락해 좀비가 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바야흐로 시작된 ‘좀비 시대’로부터 약 6개월 후, 어른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채 19금 구역에 외로이 살아남은 아이들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의 좀비들은 물론 새로운 타입의 돌연변이 좀비 ‘핑크’들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기도 하며, 옆 동네에 살면서 가끔 마주치는 문어 패거리를 만나 경쟁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좀비에게 물려도 끄떡없게 만들어준다는 마약 ‘플라이 하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아이들은 효과조차 미심쩍은 마약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데…….
결국 어렵게 구한 ‘플라이 하이’를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서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본 미강은 그저 섭섭하게만 생각했던 엄마와 지안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며 후회한다. 하지만 플라이 하이는 좀비에게 물린 대장과 분도의 목숨을 구해주지 못하고, 졸지에 셋만 남은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어가며 불안정하고 위험한 세상 속에서도 계속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작가 진저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여러 가지 장르의 작품을 그려왔던 소설가이다. 현재 네이버에서 웹소설 <스니커즈를 신은 소녀>를 연재중인 작가의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비극적 종말을 맞이해 가는 ‘좀비의 시대’를 그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긴장감과 삼각의 간지러운 로맨스, 그리고 오묘한 따스함이 교차해 흐르고 있어 쉽사리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줄거리
인기 여배우 연해린이 약물에 취한 채 자신의 빌라 옥상에서 추락한다. 7층 높이에서 추락했음에도 죽지 않은 그녀는 좀비로 새롭게 태어나 희생자들을 물어뜯으면서 ‘좀비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어른들은 모두 죽거나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린 ‘19금 구역’. 이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의 좀비들은 물론 돌연변이 ‘핑크’들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기도 하며, 옆 동네에 살면서 가끔 마주치는 문어 패거리를 만나 경쟁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좀비에게 물려도 끄떡없게 만들어준다는 마약 ‘플라이 하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아이들은 효과조차 미심쩍은 마약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분분하게 갈린 의견 때문에 갈등한다. 심지어는 무리하게 사냥을 나갔다가 핑크에게 당해 친구를 잃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어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해 나가는 아이들의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소통이 부족한 현대 사회 가족의 갈등을 겪었던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 미강의 모습을 통해 극한 고독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 청소년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추천사
아프고 지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미덕
좀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무한경쟁의 삶 속에서 낙오된 인간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간들, 결국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이 만들어낸 괴물인 셈이다. 결국 그 괴물은,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 괴물은, 수많은 친구들을 누르고 오직 1등이라는 깃발을 꽂아야만 살 수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강해져야 하고, 더욱 강해져야 하고, 더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그 끝없는 질주 속에 나타난 괴물은 인간들 세상을 깡그리 파괴하면서 더 강해지고, 또 강해지기만 한다. 그러니 옥탑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도 없으며, 머지않아 화성을 간다고 운운하던 강대국들의 도움도 없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오직 스스로 살아남거나 좀비에 물려서 죽는 것, 둘 중 하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은 없지만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거의 배터리가 닳아져가는 시계처럼 움직이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소설의 결말에서 어떤 자그마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부턴지 우리 아이들에게는 ‘성장’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루하루 목숨을 유지하면서 버티기에도 힘든 삶이다. 그런 청소년들의 삶을 이 소설은 교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흔히들 독자들은 청소년소설에서 ‘힘들어도 그 과정을 이겨내서 한 단계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한다. 지금 한국 작가들이 생산해내고 있는 청소년 대상의 문학작품이란 거의 다 그런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래야만 평가받고, 또한 그런 글을 원한다. 그래서 청소년 대상의 글을 쓰는 작가들을 ‘청소년 멘토’라고도 한다. 현실에서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서만이라도 희망을 그려서 아프고 지친 청소년들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작위적일 만큼 희망을 노래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 정선영은 마치 벙어리처럼 그 어떤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아프다고 부르짖고 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그냥 들어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냥 들어줄 뿐이다. 그것은 살아가는, 아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청소년들의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_이상권(소설가)
예기치 않은 리얼리즘이 되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청소년이 독자이지만, 작품 속 청소년은 교육과 계몽의 객체로 대상화되기 일쑤다. 그런데 이 책 『좀 비뚤어지다』는 청소년문학의 고질적인 강박에서 이례적으로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치유를 위한 상처, 화해를 위한 갈등, 사랑을 위한 증오 같은 인위적 장치들은 이 작품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여기에는 ‘어른 없는 세계’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른이 아이의 세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먼발치서 지켜보고 있던 어른들이 마지막에 등장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사태를 수습하는 일도 없다. 『좀 비뚤어지다』의 세계는 어른이 아예 공백 처리된 시공간이다. 여기서 움직이는 어른이 있다면 모두 좀비다. 좀비가 아닌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어떤 형이상학과 세속적 양식들마저 사라진 파국의 상황에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결사적으로 뛰고 싸운다. 정선영 작가는 아이들의 가쁜 숨을 형상화하듯 문장을 잘게 쪼갰다. 글의 속도감은 파죽지세, 쾌락적일 정도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오늘날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영상매체의 언어에 훌쩍 가까워졌다.
한편 2014년 4월 16일 이후, 『좀 비뚤어지다』는 예기치 않은 리얼리즘이 되고 말았다. 좀비들이 아이들을 죽이고 뜯어 먹는 세계는, 곧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에 대한 적나라한 은유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_박권일(문화평론가)
작가의 말
아, 불안하다! 불안해서 미치고 팔짝 뛰겠다!
어른들은 돈이 떨어져서 가정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하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웃고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한 중에도 문득문득 이렇게 살아서 바르게(?) 클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시커먼 피부를 흉측하게 늘어뜨린 좀비들이 골목골목을 배회하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
조금 과장하면 그것이 현재 아이들의 눈에 비친 매일의 모습일 수도 있다. 가족은 뭔가 애틋하고 성가시면서도 온전한 힘이 되지 않고, 공부할 것은 산더미인데 하기 싫고, 그러면서도 앞날이 걱정되어 죄책감만 늘어나는. 뭐가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세상도 사람들도 조금씩 비틀려져 보이는 게다.
아이들은 그 비뚤어진 세계에서 불사의 좀비가 되든가, 또는 좀비를 물리치는 용감한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나 잘 클 수 있을까?’
스며드는 불안함에 이것저것 일탈을 시도해보아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오히려 십대 후반으로 갈수록 튀긴 팝콘 알갱이마냥 불안이 증폭되어만 간다.
그래. 그땐 나도 그랬으니까 안다. 전부는 몰라도 손톱만큼은 안다. 그리하여 다 큰 어른인 지금의 나도 별별 걱정에 두 발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불안할진데, 폭발적인 성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육체도 정신도 8단 변신 로봇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불안한 건 당연한 이치다. 불안함에 아이들은 실수를 밥 먹듯 하고, 때론 원하지 않게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에게 칼날을 겨누기도 한다.
그럼,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어디로 걸어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어른인 나도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정답을 줄 수가 없다. 진짜 미안하다!
그렇다고 해도 절망은 말자. 19금 구역에 스스로를 가둔 대장이 바랐듯이, 영원한 피터팬은 없다.
물론, 마침내 성년이 된다고 한들 감동적인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짙은 안개가 걷히면서 찬란한 등대의 불빛이 짠! 하고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반드시 성장한다. 어떤 식으로든 어른이 된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대자연의 진리이다. 적어도 시간이 흘러 마음의 키가 커지면 내 두 눈으로 직접 그 짙은 안개를 뚫어볼 수 있는 풍경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이 잘 컸는지, 못 컸는지, 각자의 판단도 가능해질 게다. 아무리 못난 짓을 해도 우리는 그 자리에 정지해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마음껏 불안해하라. 갑자기 좀비 세상에 던져졌다 해도 그 불안함 속을 터벅터벅 힘차게 걸어가 보라. 이빨을 세우며 달려드는 좀비들을 하나씩 물리쳐 보라.
“불안해도 괜찮아. 사실 다들…… 그런걸.”
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