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의 여자와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멜버른에서 겪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주인공은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대학 생활을 잠시 접고 멜버른으로 여행을 떠났다. 고정된 삶의 패턴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산다는 것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싸고 빠른 비행편인 멜버른행 비행기에 오른다.
주인공은 고요하고 청아한 햇살이 내리는 멜버른의 첫인상에 도취된다. 그곳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처럼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낯선 여행자인 그에게 멜버른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가 묵게 된 숙소는 얇은 벽돌로 지어져 방음이 되지 않아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었다. 식당에 들러 음식을 하나 시키는 데도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는 혼자서 여행을 한다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 순간이나 멋진 광경을 보고도 혼자 좋아해야 하는 순간.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눈을 떴을 때 방 안을 덮쳐오는 어둠을 뚫고 첫 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늘 나 스스로여야 한다는 점.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날, 목적 없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에 잠겨 있던 주인공에게 다가온 일본인 소녀가 다가온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멜버른을 안내해주기를 청한다. 그날은 주인공이 멜버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자, 그녀가 멜버른을 여행하는 첫날이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소녀의 물음에 주인공은 멜버른의 야경이라고 답하지만, 장소를 묻는 그녀에게 그는 다시 세인트 킬다 바닷가를 말한다. 둘은 그곳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다. 그들은 야키소바 빵을 만들 재료와 와인을 사서 전차를 타고 바닷가에 도착한다. 흐린 날씨였지만 바다를 본 그들은 심장이 떨려왔다. 바다라는 거대한 대상에, 그 매혹적인 내음과 우렁찬 소리에, 거칠고 차가운 공기에, 그들은 압도당한다. 바다는 그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을 것만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던 소녀는 주인공에게 건배를 청한다. 그녀의 손에 들린 와인이 찰랑거렸다. 온몸에 일렁이는 바람에, 그녀는 크게 호흡을 했다. 그녀의 몸짓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파도 소리와 터질 듯한 심장 소리를 감추려는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기분이 너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어!”
하늘을 울리던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졌다. 날아오를 것 같던 그녀는 더 이상 그녀는 뛰어오르지 못했다. 감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다리는 파도가 사라지는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무릎 꿇은 그녀의 눈동자는 현실을 되찾았고, 과거가 사라지고 현실이 돌아온 그곳에서, 슬픔이 영글었다. 그녀의 춤은 끝났다.
그녀의 춤은 바다를 건너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남기고 떠나온 밴쿠버로 향하지 못했다. 그와 그녀는 모두 하고 싶은 말을 가슴속에 남겨둔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주인공은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두고 온 것을 챙기러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방 앞에 아직 잠에서 덜 깬 소녀가 멍하니 서 있었다. 소녀는 주인공을 배웅하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주인공은 물건을 두고 가지 않았다면 소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화나고,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주인공이 그녀를 안았다. 순간 당황한 듯한 그녀도 주인공을 두 팔로 안았다.
캐리어를 끌고 역에 도착한 주인공은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소녀는 처음 주인공을 만났을 때 그에게 행운을 빌어줬다. 주인공은 그녀를 만난 것이 행운일까 떠올린다.
‘지구 위 60억 인구 중 외로운 행성을 떠돌던 두 영혼이 한 지점에서 마주했다. 그것은 만남. 그리고 그 우연한 만남이 지나고 그들이 교차했던 지점이 엇갈릴 때 그들은 그것을 이별이라 부를 것이다. 이별에 앞서 그들은 서로를 안는다. 온기를 나누어 다시 시작될 여행에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아침, 문득 잠에서 깬 주인공은 가슴이 북받쳐 엉엉 운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날을 잊고 정신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트램(전동차)을 기다리던 바닷가 도로와 보랏빛 어둠이 내리던 하늘. 야키소바 빵을 만들었던 일과 커피를 마시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에겐 재미없는 이야기겠지만, 건물 짓는 모습을 바라보기 좋아했던 그녀의 취향과 2센트어치 감자를 샀던 이야기, 그와 그녀를 관통했던 그날의 공기에 대해. 그는 몇 십 년을 찾아 헤매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뜨겁게 끓어올라 어쩔 줄 몰랐다.
이우
1983년 2월 13일생 남자
서울 거주
커피와 영화와 몽상을 좋아하는 카페 서식자
소설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삼류 글쟁이
잃어버린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