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아닌 일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의 편린
지그문트 바우만의 일기『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탈근대’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 이 책은 그가 ‘오늘에 사유’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바우만은 이 기록에서 매일매일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그의 논평을 담고 있으며 그의 사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난다. 2010년 9월3일 ‘일기 쓰기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해’부터 2011년 3월 H.G. 웰스의 그리고 내 마지막 꿈과 증언에 관해‘ 까지 그의 일기에 담긴 사회문화적 이슈들의 바우만의 사상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의 일기엔 유로존 경제 침체에 따른 집시 인권 문제, 9.11테러 이라크 전쟁 피해, 테러리즘에 대한 고찰 등 세계 정치 이슈부터 미국 대학생 취업 대란을 초래한 국가의 역할 진단, 빈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 인터넷 익명성의 무책임 등 사회문화적 이슈 등 다양한 분야를 총망라한다. 또한 그가 세계 주요 매체에서 받는 인터뷰 과정에서 그가 왜 그런 대답을 하였으며 인터뷰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이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바우만을 잘 모르고 있더라도 바우만에 대해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한 후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 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 바르샤바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가르쳤다. 1971년 리즈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고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과 바르샤바 대학 명예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2017년 1월 9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0년 9월
일기 쓰기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해
풍차와 싸우는 유용성에 관해
가상의 영원함에 관해
단어를 기르는 것에 관해
초강대국과 완전한 파산에 관해
평균에 관해
멀티태스킹에 관해
무력한 이들을 이끄는 맹목적인 이들에 관해
집시와 민주주의에 관해
신뢰가 사라지고 거만함이 만연한 것에 관해
분노할 권리에 관해
2010년 10월
더 부유해질 권리에 관해
문화와 위장에 관해
“경고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에 관해
진퇴양난의 믿음에 관해
인류학의 아버지, 세르반테스에 관해
또 다른 소모 전쟁인 ‘CE2010’에 관해
2010년 11월
피터 드러커의 예언에 관해
2010년 12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 관해
파리를 죽이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관해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다시 만난 것에 관해
왜 학생들이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지에 관해
존경과 경멸에 관해
내 몇 가지 특이점에 관해
불평등의 새로운 모습에 관해
사회적인 것의 재사회화에 관해
당신에게 있는 친구들과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 관해
신문 1면, 다른 면에 관해
몇 가지 난제에 관해
‘민주주의’에 아직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해
2011년 1월
다시 태어난 역사의 천사에 관해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위안에 관해
성장에 관해
지속 가능성에 관해
더욱 풍요해지는 소비와 메말라가는 지구에 관해
정의와 정의로움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인터넷, 익명성 그리고 무책임에 관해
삭감의 부수적 피해와 희생자들에 관해
민주주의적 성전의 역사로부터 찢겨져 나간 여러 페이지 중 하나에 관해
비윤리적인 도끼와 윤리적인 도끼잡이에 관해
베를루스코니와 이탈리아에 관해
그를 배제함으로써 내부에 있게 하는 문제에 관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에 관해
2011년 2월
성숙에 이른 세계지역화에 관해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미덕에 관해
편들지 않음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저주에 관해
인간 쓰나미와 그 이후의 이야기에 관해
바닥 아래 있는 바닥에 관해
안에서 배제되는 것 그리고 포함되지만 바깥에 있는 것에 관해
기적이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기적에 관해
페이스북, 내밀함 그리고 외밀함에 관해
포위 아래 요새를 구축하는 문제에 관해
아메리칸 드림에 관해
2011년 3월
H.G. 웰스의 그리고 내 마지막 꿈과 증언에 관해
옮긴이의 말
지그문트 바우만의 ‘옮긴이의 말 일기가 아닌 일기’에 관해
‘인간적인’ 바우만이 여기에 있다
주제 사라마구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단어, 우리가 취하는 모든 동작은 의도되지 않은 자서전의 조각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종이에 가장 자세하게 글로 쓴 삶의 이야기만큼 진실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일기,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가 그렇다. 이 책은 나날이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바우만의 진솔한 논평이 하루의 조각으로 담겨 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유럽 지역의 집시 인권 문제, 이라크 전쟁 후 감수해야 할 사회?경제적 문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실업 문제 등 불안한 현대 사회의 고난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불안한 청년 교육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행동에는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그의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적인 감정이 많이 묻어 있다. ‘인간적인’ 바우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일기를 읽지 마라, 함께 생각하라
어떤 책은 활자가 적힌 대로 따라 읽으면 된다. 단어의 흐름대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읽는 이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가 저마다 생각한 대로 사유의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어떤 책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저자를 따라 생각해야 하는 책도 있다. 바우만의 책이 그렇고,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는 더욱 그렇다.
바우만은 근대성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회학자다. 모국 폴란드에서 반시오니즘을 겪고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자본주의과 공산주의, 그 어느 것도 시대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근대의 문제를 유동적인 ‘액체성’으로 개념화한 접근 방법은 자신의 역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불안정한 이 시대에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문제를 진단하는 그의 통찰이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이 책은 세계의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접근한다. 그날그날 〈뉴욕타임스〉 1면 기사나 사설의 사건에서 시대를 진단하고, 미셸 우엘벡이나 조지 오웰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 만연한 인간적 문제를 들춰내기도 한다. 이런 여러 시각은 바우만의 의도다. 자신의 일기를 읽지 말고 매일 함께 생각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유동성을 함께 생각하자는 말이다.
이 시대는 더 이상 고정된 것은 없고 안정된 것이 없다. 세계는 경계가 사라졌고 자본은 자유롭게 부유하지만 노동은 따라잡지 못해 빈부 격차가 커져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바우만의 날카로운 진단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만큼 바우만의 정확한 진단과 깊은 통찰이 담긴 책이 있을까? 어떤 책에서도 그가 직접 쓴 ‘일기’만큼 깊이 느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