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원칙으로부터 알랭 바디우는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위해 일곱 가지의 논점을 돌파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현대 세계의 객관적 구조를 통해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 둘째, 이러한 현대 세계의 구조가 사람들,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주체성에 끼친 영향, 셋째, 앞에서 다룬 주체성(들)에 대한 논의와 이들 주체성의 구분, 넷째, 파리 테러를 일으킨 현대판 파시즘의 인물들, 다섯째, 각기 다른 요인을 통해 따져본 파리 연쇄 테러, 여섯째, ‘프랑스’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반응과 여론몰이, 일곱째, 앞서의 논점을 다루면서 규명될, 여론몰이의 영향권과 국가의 반동적 방향에서 벗어난 ‘정치의 회귀’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알랭 바디우
저자 : 알랭 바디우
저자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1937~)는 1937년 모로코 라바(RABAT)에서 태어났고,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이며 정치 활동가이기도 한 그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았고, 1958년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며 통합사회당(PSU)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알튀세르와 교류했으나 68혁명 이후 마오주의 노선을 택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한다. 1970년대에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지만 마오주의의 쇠락과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서구 좌파들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안을 사유하기 위해 철학의 자리로 복귀한다. 그 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재구축한 주저인 『존재와 사건』(1988)을 통해 철학적 가능성의 재생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지평을 마련했다. 1985년 ‘정치 조직(L’ORGANISATION POLITIQUE)’을 만들어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통해 ‘당 없는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으며, 2000년 이후에도 프랑스는 물론 세계의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며 실천하는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파리 8대학 철학과 교수,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스위스 유럽공동대학원(EGS)의 르네 데카르트 석좌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주체 이론』, 『존재와 사건』,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윤리학』, 『사도 바울』, 『세기』, 『세계의 논리』 , 『사랑 예찬』 등이 있다.
역자 : 이승재
역자 이승재는 한국외대 불어교육과 및 동대학 통번역대학원 졸업, 현재 유럽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역서로 도나토 카리시, 『속삭이는 자』, 루슬룬드-헬스트럼, 『비스트』, 『쓰리 세컨즈』, 『리뎀션』, 프랑크 틸리에, 『죽은 자들의 방』, 야스미나 카드라, 『테러』, 기욤 뮈소, 『스키다마링크』, 로맹 사르두, 『13번째 마을』, 안 로르 봉두, 『기적의 시간』, 프랑수아 베고도, 『클래스』, 제롬 들라포스, 『피의 고리』 , 바티스트 보리유,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 줄 생각이야』, 올리비에 부르도, 『미스터 보쟁글스』 외 다수가 있다.
1부. 현대 세계의 구조 / 21
1.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 / 25
2. 국가의 약화 / 32
3. 새로운 제국적 행태 / 33
2부. 인구에 미친 영향 / 39
3부. 반동적 주체성 / 53
4부. 현대적 파시즘 / 63
5부.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 79
6부. 국가의 반동 : ‘프랑스’와 ‘전쟁’ / 81
7부. 현대 세계의 흐름과 분리된 해방의 정치의 복귀 조건 / 85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밝히는 ‘파리 테러’라는 비극,
기존의 사유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때!
“‘테러’라는 기표를 벗어던지기,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노호(怒號)
테러의 시대다.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진 하루하루의 연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의 근간이 되어버린 무차별적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그 과잉된 폭력의 희생양이라는 주체성을 다시금 부여받는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 그리고 그 말을 일종의 추체험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제 ‘테러’라는 말은 그 섬뜩한 이미지의 질감 외에는 아무것도 전해줄 수 없는 기표가 되었다. 문제는 이 헐거운 기표를 벗어던지고 ‘다시’ 주체의 문제로 돌아가야만 하는 오늘날의 정세이며, 이 주체(성)의 파국 속에 기생하는 국가-정치의 면면을 들춰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자국인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 정세에 개입하는 것을 자신의 사상적 특이점(singularity)으로 삼아 온 알랭 바디우는, ‘테러 이후’를 쉽게 재단하지 않기 위해 즉각적인 목소리를 낸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열흘 만의 강연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바디우의 강연은 2015년 11월 13일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만 바디우는 라캉이 말한 ‘증상의 상징화’라는 전략을 경유해 테러를 ‘참극’, ‘범죄’, ‘살해’, ‘대량학살’ 등으로 에둘러/새롭게 명명하면서, 테러라는 텅 빈 기표와 거리를 둔다. 그는 서두에서 분명한 어조로 “이 대량학살극을 현대 세계, 즉 세계 전체가 앓고 있는 중병의 여러 가지 현재진행형 증상의 하나”로 다룰 것을 주지하고 있다. 바디우에 의하면 이러한 증상은 “전례 없이 폭력적이고 대규모가 될 게 명약관화한” 것이다. 더욱이 불가해한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復?)의 관념, 즉 바디우가 언급한 것처럼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는” 현재의 증상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인) “이제 우리가 살인한 사람들을 죽일 차례”라는 욕망만을 증식시킨다. 결국 복수의 관념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복수의 주체는 테러의 주체와 대칭 관계를 형성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디우는 하나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원칙으로부터 그는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위해 일곱 가지의 논점을 돌파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현대 세계의 객관적 구조를 통해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 둘째, 이러한 현대 세계의 구조가 사람들,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주체성에 끼친 영향, 셋째, 앞에서 다룬 주체성(들)에 대한 논의와 이들 주체성의 구분, 넷째, 파리 테러를 일으킨 현대판 파시즘의 인물들, 다섯째, 각기 다른 요인을 통해 따져본 파리 연쇄 테러, 여섯째, ‘프랑스’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반응과 여론몰이, 일곱째, 앞서의 논점을 다루면서 규명될, 여론몰이의 영향권과 국가의 반동적 방향에서 벗어난 ‘정치의 회귀’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역사적 비극으로서의 테러, 혹은 지속된 실패로서의 공산주의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11월 13일이라는 참극의 상징을 해부하는 바디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도외시했던 고전적인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가 왜 요청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자. 우리는 국가가 마르크스의 견해를 뛰어넘어 “자본의 대리인”이 되어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관리자(초국적 기업)들이 IS와 같은 무장 세력과 결합(협상)하는 것을 목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행태에 의해 파괴되고 해체된다. 이러한 무정부적 상태에서 살아가는 ‘인구’는 어떨까?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부(富)의 46퍼센트를 차지하는 극심한 불평등, 서구적 생활양식을 수호하려는 중산층, 그리고 자본에 의해 무(無)로, 일종의 공집합으로 산정되는 수많은 난민들. 자본은 현대 세계의 구조에 속할 수 없는 이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바디우는 이런 정황 속에서 “서구사회를 갈망하는 주체성과 복수의 허무주의적 주체성”이라는 한 쌍의 ‘반동적 주체성’이 함께 공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같은 주체성의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충동으로 귀결됐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이 같은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바디우가 강연 전체를 통해 밝히는 파리 테러의 근본적 원인, 즉 우리가 세계의 모순 속에서 고통받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내재성에서 분리될 수 있는,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강연의 말미에 라신의 비극 『페드르』의 한 대목 ? “나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을 언급하면서, 파리 테러라는 비극이 “이민(자), 이슬람, 황폐화된 중동, 약탈로 몸살을 앓는 아프리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부터 ‘지속된’ 것임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지속된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그리고 그 실패에 의해 촉발된 자본주의의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 사유해야만 한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사유의 젖줄로 삼을 만한 일련의 성과가 “없지 않다”고 낙관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유목민, 지식인과 중산층, 그리고 청년층과 함께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언제나 “새로운 사유는 오직 뜻밖의 동맹,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동맹 속에서만 탄생”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