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미 수필집《그 여자 쥑이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다. 인생을 이야기하되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무게를 두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삶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관심거리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이종미의 수필은 지금 우리가 겪고 체험하는 일상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이종미
저자 : 이종미
저자 이종미는 충남 논산 출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6년 수필 《좋은 생각》,「빵대 빵 신혼의 부부싸움」. 2007년 시 「내장산」외 2편. 지구문학 신인상.
2008년 동화 ‘동서커피문학상’ 맥심상 수상. 2011년 수필 「외팔이의 양장구」로 에세이포레 신인상. 나루문학 편집장, 계간에세이포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제1부 문짝 타기
문짝 타기 – 13
뒷간의 공적 – 17
삼총사 – 21
후회 – 26
그윽한 향기 – 30
미래의 학원 – 34
엄마 걱정 – 39
귀한 내 딸 – 44
소망 – 49
희망의 도시 세부 – 54
제2부 그 여자 쥑이기
빵대빵 신혼의 부부싸움 – 65
남편의 노안 – 70
그 여자 쥑이기 – 73
무인텔 그 오빠 – 78
이일천하 – 83
대충 삶도 연습할 일 – 88
삼 김 씨 길들이기 – 94
남은 길 – 99
인연 – 104
균열 – 108
웃을껄, 껄, 껄 – 115
제3부 아포가도
모신 – 121
뻥쟁이 선생님 – 126
동심으로 치른 장례식 – 131
유리창 닦기 – 136
오공주의 갈등 – 141
무관심이 피운 꽃 – 147
물 한 모금 – 151
사문난적(蛇聞亂蹟) – 156
아포가도 – 161
얼굴 – 166
츤츤히 좀 가유 – 170
우리 왕언니 – 176
제4부 외팔이의 양장구
외팔이의 양(兩)장구 – 183
종재기 – 188
새가슴 – 192
뒷심 질긴 놈 – 197
비우는 날의 아름다움 – 203
대덕산, 오십일 센티 – 207
이장조 – 213
냉수인연 – 217
자유 부인 – 222
아주 사소한 일상 – 227
문정회 – 231
천 번은 흔들려야 – 235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종소리 – 240
해설 | 일상의 생동감, 유쾌한 수다와 파격의 힘_정목일 – 247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다.
인생을 이야기하되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무게를 두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삶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관심거리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이종미의 수필은 지금 우리가 겪고 체험하는 일상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이 여자가 없어지면, 밥하는데 무슨 애로사항이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다.”
라고 했던가.
사용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던 아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띡 띡’ 두 번의 소리로 단숨에 그 여자의 명줄을 잘라 버렸다. 아, 딸아이는 그만 개선장군이었다. 하지만 밥솥을 바라보던 작은 딸도 조금은 미안했던가.
“우리 엄마 앞에 다른 여자를 들일 수 없어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하는 게 아닌가.
2인용 압력밥솥에 길들여 사는 여인에게도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외로운 학생이나 기러기 아빠, 독거노인의 집으로 들어가 그들을 위로하고 더불어 따뜻한 밥이라도 지어주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하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우리 집에 들어와 며칠 살아보지도 못하고 단명해 버렸으니 미안하고 안타깝지 않은가. 그래 제문이라도 지어 그 넋을 위로해 줘야지 싶었다.
-「그 여자 쥑이기」 일부
「그 여자 쥑이기」는 이종미의 개성과 발상법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가정의 필수품이 되고만 ‘전기밥솥’을 소재로 한 글이다.
제목만을 보고서 독자들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읽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만들어 놓고 있다. ‘죽이기’가 아니고 ‘쥑이기’라는 비속어의 도입도 흥미롭고 적절하다. 이종미의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작가만이 터득한 개성과 발상법에 따라, 시의적절한 호기심을 유발시킬 줄 아는 어법을 지녔다.
누구나 구사할 줄 아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표현법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새롭고 독특한 자신만의 안목과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밥솥’을 소재로 이런 발칙한 발상을 전개하는 응용의 솜씨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작가다운 재치와 능력을 짐작케 한다. 가정에서 주변에서 누구나 체험하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서 독특하고 색다른 일면을 들추어내는 재능을 보인다. 이런 점이 작가적인 안목과 재능이 아닐 수 없다. 「그 여자 쥑이기」에서 가전제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안목이나 전 가족들의 관심과 의견을 드러내게 한 점, 더구나 ‘그래 제문이라도 지어 그 넋을 위로해 줘야지 싶었다.’는 휴머니즘까지 표출시켜 놓고 있다.
예사로운 일상사에서 역발상이나 관찰의 깊이로 얻어내는 삶의 긍정성, 풍자, 익살, 해학을 보여준다. 엇비슷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색다른 변화, 표정, 감성을 읽어낼 줄 아는 안목과 슬기는 독자들에게 흥미와 신선한 파격을 안겨준다. 현실 직시의 날카로운 이성과 함께 외로운 이를 감싸주는 온정의 촉감이 있다. 느슨하게 물러나 있지 않고 첨예한 의식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삶의 열기와 개척과 도전의 정신이 보인다. 인생무상을 반추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종미의 수필에선 싱싱한 파도 같은 젊음과 기백과 도전의 모습이 출렁이고 있어 일상이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고 변환시킬 줄 안다.
이종미의 수필이 많은 여성 수필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과감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나 ‘토로의 문학’이라 한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허물이나 과실에 대해 독자들에게 실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떳떳한 일은 주저 없이 드러내지만, 허물이 될 만한 일에 대해선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한다. 잘못이나 허실, 부끄러운 일도 고백을 통해 얼룩을 지워내는 일인데도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여지가 두렵기에 힘든 법이다.
어느새 창문이 훤해왔다. 새벽에 깜빡 잠들었다가 깨보니 친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교회에 간 모양이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설령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벗어난다 해도 무인텔 밖으로 나가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 알 리가 없었다. 더구나 무인텔 주변은 사통팔달 뚫린 시청 부근이 아니던가. 게다가 차도 없으니 무엇을 타고 집으로 간단 말인가. 이런 때를 두고 난감하다고 하던가. 내 구원자는 남편이었다. 그에게 해결책이 있을 성싶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눈치 챘는지 대뜸 어디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방 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렸다. 이십 분도 채 안 되어 그가 나타났다.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바라보니 되려 그가 부탁하는 말투로 한 마디 한다.
쉰 넘어 갱년기도 아닌 사춘기를 맞은 듯싶단다. 바깥세상이 궁금하면 자기와 함께 나가고, 친구들과 밤새고 싶으면 화내지 말고 기분 좋을 때 허락받고 나가란다. 홍합을 닦으며 핀잔주던 좀팽이가 아니었다. 그는 품 넓은 오빠였고,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할 만한 남자였다.
– 「무인텔 그 오빠」의 일부
삶은 언제나 완전한 건 아니다. 실수를 하면서 배우고, 자만하다가 기회를 놓치곤 한다. 「무인텔 그 오빠」는 비밀장면까지도 시원스레 공개하면서 실수를 품어주는 남편을 ‘내가 가장 사랑할만한 남자’임을 깨닫는다. 이종미의 수필을 읽는 맛은 숨기지 않는 삶의 허실과 미완의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과감성이 한 몫을 하고 있다. 허실을 감추고 장점은 과시하려는 모습들과는 판이한 차이점을 보인다. 작가의식이 젊고 싱싱하다는 것은 장점이 아닐 수 없다.
– 정목일(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