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계간지 2024 겨울
저자 | 자음과모음 편집부 |
저자2 | |
출판사 | 자음과모음 |
발행일 | 2024-12-01 |
사양 | 496쪽 |
ISBN | 2005-2340 (44) |
분야 | 국내도서 > 계간지 > 문학 |
정가 | 18,000원 |
63호를 맞는 계간 『자음과모음』겨울호에서는 ‘동료’에 관해 다룬다. 과거 한국문학은 공동체와 집단적 행위성을 통해 형성·발전해왔다. ‘동인’과 ‘동지’는 특정 목표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칭하며, 강한 소속감과 배제의 논리를 동시에 작동시켰다. 그러나 현대 사회, 즉 초연결사회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쉽게 만들어지고 단절됨에 따라 ‘동료’는 느슨한 연결체로 변모했다. 문학계에서도 동료는 주로 작업 참조, 프로젝트 협력, 공론화 등의 계기로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이념적 동일성과 소속감이 약화된 시대적 변화의 징후로, 문학계와 더 확장된 집단들에서 집단의 의미와 기능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동료’ 개념은 개인과 집단의 경계를 탐구하며, 문학계를 네트워크로 이해하고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이번 계절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한국문학장이 들썩였다. 우리는 ‘한국문학’이 성취한 수사와 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특집을 통해 현재를 짚어보았다. 이외에도 신작시・단편소설・장편소설・에세이・메타비평・#시소・리뷰를 실었다. 더불어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발표한다.
함께하는 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되어가는 것에 대하여
우리를 묶어주는 것들, 그 ‘동료’라는 호칭에 관해 질문하다
63호를 맞는 계간 『자음과모음』 겨울호에서는 개인을 집단적 존재로 묶는 핵심 단위인 ‘동료’에 대해 사유한다. 동료의 개념적 변화는 이념적 동일성과 소속감이 희미해진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이제 ‘동료’는 느슨한 연결체 안에서 행위자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동료’와 기존 공동체 개념의 차이, 예술 현장에서 동료의 역할, 동질성과 연대의 (불)가능성, 이를 통한 대안적 가능성에 대해 다룬다.
우선 김영찬 평론가는 전이라는 정신분석 개념을 통해 비평에서 동료의 의미를 탐구한다. 전이는 비평가가 독아론에 빠지지 않고 분석가와 피분석가로서의 위치를 오가게 하며, 동료 맺기의 근사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최가은 평론가는 동료를 실체화하지 않고, 동료 개념을 초과하는 잔여에 주목한다. 그는 동료 대신 우정 또는 문학적 친구라는 비실체적 함께-있음을 제안하며, 문학은 바로 이러한 우정으로 (탈)구축된다고 본다. 이여로 평론가는 동료를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동료 맺기가 될 수 있음을 밝힌다. 이는 기존 체계를 안정화하는 대신 새로운 만남으로 체계를 재배치하는 행위로, 범주의 재설계라는 점에서 미적 실천의 성격을 지닌다. 우지안 연출가는 동료라는 단어에 깃든 끈끈한 감정을 탐구한다. 동료 되기는 단순한 동료애가 아닌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의 취약함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 위태로운 과정이 오히려 현대적 동료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김영희 교사는 교사들과 수업 자료를 공유하며 맺은 동료 경험을 다룬다. 이 글에서 동료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도 포함된다. 공교육 붕괴 징후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문학을 읽는 경험은 상호 호혜적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의 쾌거!
한국문학의 연결과 현재: 한강과 그 너머
지난 10월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지고 한국문학계는 크게 들썩였다. 그리고 이는 한국문학장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한국문학이라는 공통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 그러나 ‘한국문학’이라는 항으로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담론적으로 단일성이나 고정된 정체성으로 환원되고 마는 이 연결감에 다른 명명을 부여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를 고민해보았다. 이를 위해 이택광 평론가와 이영일 번역가, 김유태 기자에게 한국문학의 현재를 점검해보는 글을 청했다. 한국문학의 세계시장화, 한국문학의 번역, 그리고 작가 한강의 글쓰기에 관한 각자의 사유가 담긴 이 기획특집 코너에 주목해주시기를 바란다.
최근 비평 논의와 장르를 재조명하는 메타비평
메타비평에는 세 분의 평론가가 최근 한국문학 담론과 관련한 풍성한 논의가 담긴 글을 보내주었다. 성현아 평론가는 포스트휴머니즘 및 신유물론적 접근의 한계를 짚고, 몸의 물질성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현호정과 조시현의 소설에서 신체의 물질적 얽힘을 살펴,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어려움을 강조한다. 오혜진 평론가는 역사 재현 텍스트를 통해 국가주의적 권력을 의문시하는 정치적 과제와 역사의 재현 가능성을 탐구한다. 한설 평론가는 포스트휴머니즘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라투르와 황현산의 문학론을 경유해 새로운 ‘현실주의’적 접근을 제안한다. 현재의 담론에 대한 세 분의 예리한 통찰과 꼼꼼한 분석에 감사드린다.
지난 계절의 문학장에 관한 속 깊은 대화 #시소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나간 ‘리뷰’
#시소에서는 지난 계절의 시에 대해 김영임-김주원 평론가가, 소설에 대해 전청림-허윤 평론가가 대화를 나누었다. 김영임·김주원 평론가는 최근 비인간이 등장하는 시에 나타나는 의인화의 문제에 관한 대화를 통해 비인간과 인간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전청림·허윤 평론가는 최근 발표된 한국의 SF적 소설이 가진 다채로운 주제와 상상력, 그로 인해 강렬하게 우리를 통과해간 작품들에 관한 대화 등으로 풍성하다.
리뷰에서는 김준현・문혜원・안서현・양순모・임지연・최연진 평론가가 세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소설집을 읽어주었다. 세심한 마음으로 김선오의 『싱코페이션』, 안현미의 『미래의 하양』, 위수정의 『우리에게 없는 밤』, 기원석의 『가장낭독회』, 박해울의 『요람 행성』, 단요의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풍성한 신작시와 단편소설, 계속되어가는 장편소설 연재
사회 그리고 그 안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써내려가는 에세이
독자들에게 이번 가을의 시와 소설, 에세이가 기쁘게 가닿기를 바란다. 김동균・남지은・문태준・신동호・에밀리 정민 윤・유진목 시인이 신작시를 보내주셨고, 투고해주신 김원호 시인의 시도 함께 실었다. 권여선・김채원・이하진・청예・최미래 소설가는 순문학부터 SF까지 다채로운 프리즘의 소설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이주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연재가 진행되며, 에세이 지면에서는 구자혜 극작가와 김소리 변호사, 김예솔비 기자가 사회 속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겨울, 올해의 마지막 작가 탄생!
제1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 발표
겨울호에서 제1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이 발표되었다. 이번 네오픽션상은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다채로운 즐거움이 가득한 장르문학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심사 위원들의 깊은 논의 끝에 작가 오동궁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예/본심작에 대한 심사 위원의 평과 수상자의 수상 소감이 실렸다. 무한한 세계를 만들어낸 수상자에게 기쁘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전한다.
머리글 김보경 우리를 이어주는 것들
크리티카|동료
김영찬 비평의 ‘전이’가 말해주는 것
최가은 문학적 친구 ― 아무것도 쥘 수 없는 장소
이여로 동료를 말하며 말하는 것들 ― 집단, 개념, 관계
우지안 우리는 절대 하나가 아니야
김영희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는 일 ― 교사의 동료들
특별기고
이택광 한국문학이 맞이한 새로운 광야
이영일 한국문학과 윤리, 문학번역과 비평
김유태 하나의 답을 듣기 위한 백번의 인터뷰 ― 소설가 한강 인터뷰 후기
제1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 발표
시
김동균 노랑 지붕 집 외 1편
김원호 속 커튼 외 1편
남지은 곧 거울이 깨질 시간 외 1편
문태준 청무 외 1편
신동호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외 1편
에밀리 정민 윤 육식 외 1편
유진목 커튼콜 외 1편
단편소설
권여선 일주(一周)
김채원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이하진 발로(發露)
청예 여름을 기다렸던 돛들을 위해
최미래 과자 집을 지나쳐
장편소설
이주란 일요일 녹차 코토르 (2)
메타비평
성현아 인류세 시대 변화된 신체 감각과 물질로서의 몸 ― 인간을 해체하는 소설의 전위
오혜진 눈송이와 장막과 분심
한설 비평적인 것의 재조립
에세이
구자혜 둔 시간
김소리 사랑과 결혼, 국가와 결혼
김예솔비 소수적 파괴의 시대
#시소
김영임 · 김주원 ‘우리’와 ‘공존’ 사이에서
전청림 · 허윤 말하는 돌과 핏빛 자루가 든 편지
리뷰
김준현 접힘 이후의 펼침― 김선오, 『싱코페이션』
문혜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生! ― 안현미, 『미래의 하양』
안서현 꿈의 서스펜스 ― 위수정, 『우리에게 없는 밤』
양순모 기원석, 낭독회 그리고 우리 ― 기원석, 『가장낭독회』
임지연 작은 선의가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몰라 ― 박해울, 『요람 행성』
최연진 테마파크의 아이들을 위한 망상 ― 단요,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우리의 우선적 관심은 비평 장에 존재하는 잠재적 독자인 또 다른 비평가와의 전이 관계다. 이 또 다른 비평가란 누구인가? 비평가는 비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평계라는 상징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이 상징질서는 비평적 글쓰기가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비평적 타자의 담론이다. 역사적으로 무수한 비평가들이 쌓아 올린 비평의 언어와 질서와 배치. 이것은 보이진 않지만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안다고 가정된 주체’이며 지금 이곳 비평적 글쓰기의 내포적 독자다. 따라서 비평가는 비평가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 타자의 담론과의 전이 관계 속에 있다. 예술가 못지않게 비평가 또한 자유롭지 않은 ‘영향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바로 이 전이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비평적 글쓰기는 바로 그 타자의 담론과의 대화이자 경쟁이고 투쟁이다.
_김영찬, 「비평의 ‘전이’가 말해주는 것」
문학적 친구. 내 마음의 들뜸과 친밀감이 알맞게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이 말은 그러나 나에 의해 바로 그 모양으로 쓰이도록 선택되는 과정에서는 물론, 쓰인 직후 내게 계속적인 긴장감을 선사했다. ‘문학적 친구’라는 말의 선택은 ‘좋아하는 작가의 해설’이라는 제도적으로 특권화된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 특권적 경험이 그것의 성격을 이유로 단지 공적인 차원에서 머무르거나 해소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것은 내게 모순되고 내재적인 충돌로 감지되며 공과 사의 경계를 흔들어놓았는데, 이를테면 나는 나의 경험을 ‘우리’가 아닌 어딘가 ‘바깥’으로 온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오직 ‘나’와 ‘우리’의 것으로만 그것을 가두어두고 싶은 옹졸하고 배타적인 마음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적 친구’는 그런 나의 모순을 아울러 대변할 잠정적이고도 예비적인 방편이었다.
_최가은, 「문학적 친구」
친구와 동료, 패거리와 동료, 집단과 동료를 구분했지만 우리가 놓고 온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보존해야 ‘동료’는 현실에서 작동한다. 위 인용구 전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아주 흥미로워!”이듯 말이다. “기호들을 포착하고 받아들이는 감성이 무관심한 지각을 대신한다.” 그리고 이 말은 앞선 모든 이야기가 ‘난 흥미 없어’라는 한마디로 치워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남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흥미로워하고,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 도식의 악순환에 초점을 맞춘 것이 비판적 욕망이론의 기초였다. 이 글은 기쁨에 죄책감을 부여하는 속류 비판이론과 ‘매 순간 우연한 결과인 듯 사랑할 것을 발견’하는 기만적 비평 모두를 거부하고, 동료를 비롯한 일군의 개념망을 통해 그것을 생성으로 배치하고 싶었다. 내가 흥미로워하기 시작하면, 남들도 흥미로워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흥미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하는가?
_이여로, 「동료를 말하면 말하는 것들」
동료에 대해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화가 나고, 쪼잔해지고, 졸렬해지고, 지금 떠오르는 그 녀석을 당장에라도 이리 잡아다가 죽이고 싶은 마음이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그럴 수밖에 없었냐고, 그래놓고 우리가 친구고 동료고 동지냐고 쥐어박고 더 심한 짓까지 하고 싶다. 폭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한 친구가 어떤 몹쓸 녀석에 대해 말했던 장면을 떠올린다. 우리 그 녀석이 걷는 길에 잠복하자. (이 작전에는 최소한 세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그 녀석의 양팔을 한 사람씩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나머지 한 사람은 그 녀석의 얼굴에 봉지를 씌우자. 그리고 돈가스를 만드는 데 쓰는 고기 망치로 그 녀석의 얼굴을 두들겨주자.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짓이기자. 물론 이 상상 속에서 짓이겨지는 녀석은 우리 동료가 아니다. 양팔을 잡고 고기 망치로 두들겨 패는 녀석들이 우리 동료다. 동료가 아닌 녀석들은 고기 망치로 두들겨 패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료가 죽도록 미울 때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_우지안, 「우리는 절대 하나가 아니야」
작성자의 목표는 자신의 멋진 수업을 전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재미나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 해보자며 동료에게 손 내미는 일에 있다. 이 현상은 교사 집단이 특별히 나눔을 좋아한다거나 인성이 훌륭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업이 공공성을 띄는 행위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가능하다. 속도가 아주 더딜지 몰라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성과를 확인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확신을 지닌 이들이 공교육 교사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공유하는 수업 자료는 제작자보다 확산성에 방점이 찍힌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얼마나 확산되어 더 많은 학생에게 가닿는가’를 중시하며 기꺼이 수업 자료를 나누는 문화는, 내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주요한 이유다.
_김영희,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