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지북 샤미의책놀이터 장르동화상 수상작 심사평

작성자
자음과모음
작성일
2024-06-12 14:20
조회
7643
제1회 이지북 샤미의책놀이터 장르동화상 수상작
대상 : 정원주,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

🔖 제1회 이지북 샤미의책놀이터 장르동화상 수상작 심사평
제1회 이지북 샤미의책놀이터 장르동화상에 151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귀한 작품을 응모해주신 여러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인 김서정, 방미진, 안미란은 응모작을 나누어 읽고, 본심에는 「그림자 가게」 「누구나 국밥집」 「단추탐정과 의문의 과자상자」 「서준이는 어린이 우주 보안관」 「스읍스읍 쉬잇쉬잇 뱀 선생」 「이야기 만물상」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 일곱 편의 작품을 올리고 논의하였다.



- 김서정 평론가

어린이문학의 역사에서 판타지는 그 출발점이라고 할 만한 자리에 있다. (동의하지 않는 학자도 있지만) 근대로 접어들며 ‘어린이’라는 인간군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확립되고(그 전에 어린이는 그냥 작은 어른이었다) 그들을 위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옛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신기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심심한 것이 옛이야기니, 어린이문학도 자연스럽게 판타지가 마음껏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어린이문학에 사실주의가 강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판타지가 무협지나 SF와 혼용돼서 쓰이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굳건한 장력으로 어린이문학을 끌어당기고 있었고, 이제는 판타지라는 갈래를 따로 나누는 것이 별로 의미 없어 보일 정도로 환상성은 작품들 속에 널리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그 환상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현실에 어떻게 조화롭게 녹아 있는가, 어떤 경향들을 보이는가 하는 점들이 작품과 함께 깊이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당선작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은 고전적인 판타지 모티프를 두루 갖춘 수작이다. 의인화되었지만 자기 본성을 잃지 않은 동식물 캐릭터들, 무슨 병이든 고치는 약이라든가 죽은 자의 되살아남 같은 초월적 모티프들, 뭔가를 찾아 모험을 떠나고 고난을 겪다가 성공해서 돌아오는 성취담 요소들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이런 구조와 설정이 전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린이문학의 전형성은 구태의연함이나 상투성이 아니라 특유의 미학적 요소이다. 그런 전형성 위에 어떤 변주를 덧입히는가에 따라 작품은 독창적일 수 있다.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은 전형성과 독창성이 균형을 이루는 좋은 작품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서로 잘 어울리고, 현재의 사실과 과거의 환상이 긴밀하게 엮인다. 코로나 발현 초기의 긴박한 상황에서부터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를 위해 악행을 마다 않는 선녀의 심리까지,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모티프들이 흥미로운 서사와 개연성 탄탄한 구조 안에서 속도감 있게 상승한다. 무엇보다도 서로 돌보고 화해하고 연민으로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이 토대가 되어 이야기를 굳게 받쳐준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도 좋은데, 다만 너무 침착하고 굴곡 없는 서술 방식에 조금만 고저장단의 리듬감을 얹어준다면 읽기가 더 흥겹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그림자 가게」는 서구적 판타지 문법이 매끈하게 전개되는 수작이고 「이야기 만물상」은 한국적 판타지 모티프들의 활용이 흥미로운 수작인데, 두 편 모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철학이 좀 깊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국밥집」은 유머와 경쾌함, 「서준이는 어린이 우주보안관」은 새로운 SF적 모티프가 강점이지만 너무 느슨한 구조와 불필요한 에피소드와 대화들이 작품의 밀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본심작은 물론 투고작 모두의 작가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 방미진 작가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낯설어질 때


어린 시절, 매일 오가며 생활하는 공간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숨바꼭질하다 너무 조용해 나가본 골목길이 텅 비어 있을 때, 건물 아래 뚫린 의심스러운 구멍을 발견했을 때, 혼자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 문득.
그 순간 평범한 골목길은 미로로 변해버리고, 건물 지하실 환기 구멍 너머는 소인들이 사는 세계가 되며, 학교 운동장은 각종 귀신과 괴수들의 아지트가 된다. 판타지가 펼쳐지고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지금의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학원 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뿐인가? 세월도 비껴간 학교 괴담은 초등학생 사이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그런 의미에서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은 아이들에게 무척 가까운 이야기이다.
화려한 해외여행도 좋고, 빼곡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체험 학습도 좋지만, 평범하고 흔한 동네 모험의 가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콩알만 한 친구의 모험기가 독자들에게 가닿아, 우리 일상의 작은 모험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덧붙여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뿐 아니라 응모작 모두에게 건투를 빌어주고 싶다.
특히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들은 판타지의 강점을 저마다 잘 살린 작품들이었다.
「그림자 가게」는 전통적인 판타지를 안정적으로 그려냈으며, 「이야기 만물상」은 설화를 잘 활용하였고, 「스읍스읍 쉬잇쉬잇 뱀선생」은 선생님 캐릭터가 신선하고, 발랄한 분위기와 선명한 이미지도 강점이었다.
「누구나 국밥집」은 가독성 있는 문장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요소가 재치 있었다. 「단추 탐정과 의문의 과자 상자」는 트렌디한 감각과 깔끔한 이야기 진행이 돋보였다. 「서준이는 어린이 우주 보안관」은 서사에 활력이 있고, AI를 강요받는 인간 아이와 인간다움을 강요받는 로봇 아이의 구도가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 작품들이 잘 다듬어져, 저마다 어울리는 멋진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와 독자들을 만나길 기원한다. 부디, 자신이 가진 강점을 의심치 말고 앞으로도 계속해 도전하고 모험하길 바란다.



- 안미란 작가

일상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모험의 상상력


어린이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하는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다양한 소재와 장르적 재미를 즐길 만한 작품이 많았다.
추리물의 경우, 저학년 독자를 염두에 둔 탓인지 동물 캐릭터가 탐정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과 큰 차별점이 없다면, 쉽게 읽힐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공모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SF에 해당하거나 혹은 그러한 특성을 가진 글 중에는 단순히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요소만 가져왔을 뿐,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 더러 있었다. 그중 「서준이는 어린이 우주보안관」은 본격적으로 SF가 지니는 문제의식을 드러낼 뿐 아니라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어서 본심에서 오랜 시간 거론되었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인물 설정이라든지 도입부의 지루함이 아쉬웠다.
응모작 중에는 유령, 귀신, 좀비 등이 등장하는 것도 많았는데, 단순히 호러물이라고 뭉뚱그리기 어려운 다양한 서사와 주제를 보여주어서 반가웠다. 특히 「누구나 국밥집」은 시종일관 따스한 시선과 간결하고 안정적인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마무리가 허술하고 너무 급작스레 끝나는 감이 있어 당선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림자 가게」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준 판타지로서 문학적 수련 과정을 오래 거쳤음을 짐작하였다. 그러나 어른의 관념을 대입한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서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어린이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독서 여정이 되려면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그들을 응원하며 한바탕 신나는 모험을 함께 떠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콩알이의 위험한 여행」은 교실에서 길러지던 햄스터 콩알이가 세린이네 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힘찬이라는 반려견과 힘을 합쳐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각 인물이 지니는 서사가 치밀하고, 행위의 개연성이 충분하여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심지어 복수를 꿈꾸며 악행을 벌인 등장인물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행위의 이유 또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또한 곳곳에 배치된 유머러스한 요소가 작품의 생기를 살려준다. 예를 들어 빌라 단지, 놀이터, 수영장, 언덕 등 주변에서 흔히 보아왔던 생활 공간이 거대한 사막이나 바다로 오인되는 장면이 그러하다. 모험의 공간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주변의 일상 공간에서도 이만한 모험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이다.
즐거운 책 읽기의 세계로 이끌어줄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신나는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글을 써줄 것이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서정(평론가), 방미진(작가), 안미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