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퍼플 빅을 끼고 본 세상은 언제나 달콤했다
하지만 모두 가짜였다
2024년 신춘문예 동화 당선, 한국안데르센상 대상, 미래엔 어린이책 공모전 문학 부문 우수상을 연달아 수상한 정화영 작가의 신작 『퍼플 빅』이 이지북 고학년 어린이책 시리즈 〈책 읽는 샤미〉 마흔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퍼플 빅을 끼면 풍족한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가짜였다.’라는 게 이 작품의 주요 설정이다. 점차 드러나는 황폐한 진짜 세계와 맞닥뜨리며 갈등하는 주인공 한강. 과연 열두 살 한강은 달콤한 가짜만을 보여 주는 퍼플 빅을 빼고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첫 장을 넘겨 보랏빛이 나는 5세대 빅을 선물로 받는 한강의 모습을 보는 그 순간, 또래 어린이 독자는 타인의 일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이분법으로 나뉜 세상에 뚝 떨어져 갈팡질팡하는 한강은 나 자신이자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퍼플 빅』을 통해 열두 살 한강,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 지은이
글 정화영
제1회 SBS TV 문학상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을 받고 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202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같은 해 2024 한국안데르센상 대상, 제8회 미래엔 어린이책 공모전 문학 부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출간한 책으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누리호의 도전』 『수학 마법쇼』, 청소년 SF 소설 『비밀의 공중 호텔』 등이 있습니다.
그림 달상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고 출판, 영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 『슬리피 할로우』 『크리에이터 가디언즈 1』 『신비한 지식 백화점 경제』 『공평한 저울 세상』 『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고기를 먹으면 왜 지구가 아플까?』 등이 있습니다.
■■■ 책 속에서
“오늘이 빅을 네 몸에 이식하는 날이니까!”
“맞아. 정확히는 내 눈에 넣는 거지.”
‘빅’은 눈에 넣는 콘택트렌즈인데 신분증과 신용 정보를 대신한다. 자외선도 차단하고 시력도 교정해 준다. 학교에서 보내는 메시지도 받을 수 있으니 렌즈 하나로 모든 걸 대신하는 셈이다. _p.9
“이거, 진짜 4.1세대 빅이야? 광고에서만 보고 실물은 처음 봤어. 진짜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한번 열어 볼래?”
내 검지를 뚜껑에 가져다 대니 지문이 인식되어 부드럽게 뚜껑이 열렸다.
“정말 케이스부터 다르구나. 한정판이라 몇 개 만들지도 않았다던데.”
직원은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렌즈를 보며 말했다.
“퍼플 빅. 네가 첫 번째 사용자로구나.” _p.17
“네가 그 가방 잡을 때, 반대쪽에서 어떤 여자가…….”
“여자?”
“응. 어떤 여자아이가 네 가방 훔쳐 갔다고!”
왜였을까. 여자아이라는 말에 안과에서 맡았던 냄새가 코끝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훔친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_p.31
창밖으로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영상이 아닌 실제 풍경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진짜 빛.
‘저게 노을이라는 거야. 태양이 자러 가면서 ‘안녕, 내일 만나.’라고 인사하는 거지.’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기억 속의 한 장면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_p.40
“믿기 힘들겠지만, 이게 진실이야. 네가 본 건 빅이 만들어 낸 허상이거든.”
“허상이라니요? 가짜라고요?”
“그래, 가상 현실이야. 좋은 곳에서 좋은 걸 먹고 즐긴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 _p.49
“이 기술의 이론은 꽤 오래전에 완성됐어. 코시스 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거고.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연구를 포기한 건 코시스 때문이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진짜 세상을 되찾은 뒤에, 차별 없이 모두 함께 살아갈 거주지를 만드는 일. 그게 내가 만들 미래였다. _p.99
“강아, 가상 현실이 아닌 진짜 세상은 어때? 불편하지 않아?”
숨이 턱 막혔다.
“솔직히 실망스러워. 환상 속에 사는 게 만족스러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짜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살면 우리가 로봇이 되는 거야.” _p.99
“우리는 코시스 소속 요원이야. 코시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어.”
“근데 아저씨는 사람이잖아요. 코시스는 인공지능 시스템이고요. 사람들끼리 의논하면 안 되나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말 그대로예요. 우리가 왜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냐고요!” _p.131
가짜 인생을 살 수는 없어!
당당하게 진실을 요구하는 한강
그리고 거짓에 조종당하고 싶지 않은 우리
한강은 최첨단의 고기능 콘택트렌즈, 퍼플 빅을 열두 살 생일 선물로 받는다. 보랏빛이 나는 4.1세대 빅을 처음으로 이식받는 특별한 기회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빅을 통해 보여 주는 세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강이 사는 세상에서 열두 살 생일에 빅을 이식하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빅이 활성화되면 강화된 기능을 활용하여 과학자로 진로가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인공지능 기반 설계가 완벽한 1구역에서 버림받은 자들의 항폐한 땅인 4구역으로 쫓겨난다.
그만큼 믿었던 빅이기에 그 실체가 밝혀졌을 때 사람들이 받게 되는 충격 역시 강력하다. 내가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한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한강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편리하고 익숙한 세상에 만족하는 규현의 입장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만약에 말이야. 빅을 끼고 있는 우리가 모두 가상 현실을 사는 거라면?”
규현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가상 현실이면 어때. 잘 살기만 하면 되지. 더 기막히게 만들어서 재밌게 지내면 좋잖아.”
“그럼 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거야?”
나는 규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규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짜가 되는 거지.”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_p.74
어디까지가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고민할 필요 없이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속 편할 수 있다. 가짜가 주는 달콤함을 맛보고 누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을 직접 목격한 한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가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한강은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받아야 하는 빅의 특성을 이용한다.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 업그레이드가 아닌 다운그레이드 되도록 설정한 것이다. 다운그레이드를 받아 빅 렌즈가 만들어 내는 가상 현실 대신 진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정당하게 누려야 할 진실을 밝혀 나가는 한강의 모습은 거짓에 조종당하고 싶지 않은 ‘우리’를 대변한다.
퍼플 빅을 뺀 ‘진짜’ 세상이
모두 함께 살아갈 미래이길
한강은 초인공지능이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가상 현실을 보여 주고 마치 진짜 세계인 것처럼 조작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능력에 따라 주거지를 나누고 최신 렌즈를 구매하지 못한 짝짝이 눈이 가난의 증표가 되는 세상을 뿌리치고 한강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이후 진짜 세상을 되찾고 나서, 차별 없이 모두 함께 살아갈 거주지를 만들기로 한다. 가장 친한 친구부터 시작해 빅을 이식한 모든 사람이 진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살벌한 위험과도 당당히 맞선다.
한강은 퍼플 빅을 끼고 만나는 달콤하고 안락한 세상에 머무르거나 안도할 생각이 없다. 퍼플 빅을 뺀 진짜 세상이 모두 함께 살아갈 미래이길 바랐다. 열두 살 한강은 그런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희망을 품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정화영 신작
한국안데르센상은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세계적인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공로를 기리며 한국에서 제정된 공모전이다. 창작동화와 창작동시 부문으로 나누어 한국의 어린이 문학을 이끌 다양한 작가를 발굴한다. 『퍼플 빅』은 2024년 한국안데르센상 창작동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정화영 작가의 첫 SF 동화다.
정화영 작가는 이지북 고학년 어린이책 시리즈 〈책 읽는 샤미〉 스물아홉 번째 작품으로 출간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로 한 차례 어린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유기견, 번식견을 주제로 하여 예리하게 진실을 포착하되 그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 냈다. 정화영 작가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에 이어 신간 『퍼플 빅』을 통해 고요한 일상 속에 침잠해 있는 사회문제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꼬집는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동화 작가 정화영의 『퍼플 빅』을 지금 만나 보자.